요즘 죽음에 관한 생각이 느닷없이 떠오르고는 한다.
그런 날은 허리가 제대로 펴지지 않는다거나 이유 없이 몸이 무거워 걸음을 걸을 때도 바닥에 신발이 붙은 것처럼
더디 움직일 때 그런 생각을 한다.
그러니까 내가 첫 죽음을 느낀 것은 아홉 살 때였다.
작은 지갑을 손에 들고 건널목을 건너기 위해 뛰다가 그만 손에 들은 지갑을 놓쳤다.
그 지갑 안에는 쌀집을 하는 육촌 아저씨 집에서 담배 두 보루 값을 받아 넣은 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당시 부모님은 연초제조창에 다녔는데 월급 날이면 몇 보루의 담배를 가지고 오셨는데 가격이 시중보다 쌌던 모양이었다.
그때 내 담임선생님께서도 다달이 그 담배를 주문하셨었다.
나는 지갑을 줍기 위해 돌아온 길로 다시 뛰었는데 갑자기 천둥같이 소리가 나면서
커다란 바퀴가 내 작은 몸 바로 옆에서 멈췄다.
내가 일어나 빠져나오자 새카만 선글라스를 낀 아저씨가 버스 문을 열고 내려오다 나를 보고 주저앉았다.
그 뒤에 빵 모자를 쓴 차장 언니가 놀란 표정으로 서 있었다.
나를 잡으려고 하는 버스 아저씨의 손을 뿌리치고 뛰기 시작해 집으로 돌아와 방에서 나가지 않았다.
두 번째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여름철이면 엄마는 우암산에 있는 포도밭에 가서 포도를 사서 포도주를 담았다.
자전거 타기에 한참 재미가 들렸던 그때 여고 1학년 때었고 자전거를 타고 엄마를 따라갔다.
엄마가 포도를 따는 동안 자전거를 끌고 우암산 꼭대기에 올랐다. 그 꼭대기에서 바람을 가리며 내려오는데 몸이 날아갈 것처럼 시원했다.
급커브 길이 계속되어 속도가 붙은 자전거는 브레이크를 잡았지만 서지 않았다.
무슨 일이 생길 거라는 불안한 예감이 공포로 찾아와 얼음 위에 앉은 것처럼 몸이 굳기 시작했다.
산 벼랑 쪽으로 가지 않으려고 핸들을 돌렸지만 이미 핸들은 방향을 잃고 벼랑 쪽으로 향했다.
그 벼랑 바로 끝에서 자전거가 끼익 소리를 내며 섰다.
자전거에 발을 걸치고 종잇장처럼 가벼워진 몸으로 서서 내려다 본 산 아래는 빽빽한 나무들로 가득 차 있어 깊고 아득했고 지상까지는 멀고 멀었다.
포도 따느라 정신이 없는 엄마는 어서 좀 도와라, 어디 갔다 왔느냐 물었지만 아무 말도 못 하고 포도를 땄다.
한참 세월이 흐르고 오십이 넘었다.
여름 장마철이었다.
일이 끝나고 여러 사람과 술을 함께 마셨는데 그들은 같은 직종의 군단이었고 나는 초대손님이었다.
그들의 직업이 같다 보니 대화가 나와는 상관없이 흘렀다.
술을 마시며 다른 생각을 했다.
화장실을 갔다 온다고 하고 혼자 밖으로 나왔다.
비가 앞이 보이지 않게 쏟아졌다. 퍼붓는다고 하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
슈퍼에 들어가서 소주를 더 사고 기차역으로 들어가 철도 길을 따라 한참 걸었다.
여름이라 그런지 비가 차갑지가 앉았다.
철로 변에 앉아 빗속에서 술을 들이켰다.
한 이틀 정도 식사를 하지 않았을 때라 온몸이 술로 젖었다.
그리고 철로를 베고 누웠다.
빈속에 술을 들이켜서인지 그 빗속에서도 잠이 들었다.
더 힘든 날도 수없이 많았는데 그날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더 살고 싶지 않다고 결정을 내렸다.
그 시간 화물기차가 두 번 지나갔다는데
철로에서 고개가 떨어져 죽지 않았다.
경찰에 신고한 아들이 빗속을 얼마나 헤매었는지 몸이 다 젖어 나를 보고는 주저앉아 통곡한다.
머리칼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딸이 몸을 떨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스물넷에 짐승 같은 남자를 만나 이루 상상할 수 없는 고통과 폭력을 당하며 살았다.
그 짐승과 살면서 살아있는 것이 지옥일 때가 거의 전부였다.
그 짐승이 지금은 꼬리를 내리며 눈치를 보고 죽은 듯 지낸다.
누군가 죽어야 끝날 운명이다.
요즘 들어 죽음을 떠올릴 때면 이 세 가지가 따라온다.
지금 내 나이 64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지 않고 살아나게 된 것에 대해서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는 생각을 한다.
0/20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