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희진 대표의 충격적인 기자회견을 보고,
이후 민희진과 하이브 사이의 여론전이 꽤 극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보면서 들었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레토릭>(수사학)에서 타인을 설득하고 영향을 끼치기 위한 언어기법을 설명하며,
설득을 위해 필요한 세 가지 요소로 , 에토스(윤리), 파토스(감정), 로고스(논리)를 들었습니다.
이 세 가지 요소를 통해, 민희진 대표가 기자회견에서 어떻게 설득을 시도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1. 에토스
에토스는 신뢰도, 매력, 덕성 등의 도덕적 인격을 설득력의 자원으로 사용하는 것을 말하고,
발화자 자신 뿐 아니라, 인용하는 인물 나아가 청중의 도덕적 면모 역시 포함한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발화자의 다양한 욕설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아마도 대한민국의 기자회견, 나아가 대중을 향한 발화의 역사에서 가장 다양하고, 자주 욕설을 한 것이지 않을까 합니다.
자신은 입지전적인 성공을 거둬왔고, 그래서 전통의 강자인 SM의 이수만 전 대표의 인정은 물론, 다양한 투자자의 러브콜, 결정적으로 하이브 방시혁 의장의 '성덕' 러브콜도 받은 대단히 능력 있는 프로듀서임을,
또한 업계의 관행과 관습을 타파하는 혁신적인 창작자임을 일화를 곁들여 어필했습니다.
또, 변호사가 말려도 거칠 것 없이 흥분해서 막말과 욕설을 담아 비판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여기에 더해 상대방인, 하이브의 방시혁 의장과 박지원 대표에 대해서는, 개저씨, 개야비한, 무능력한 인물임을 뒤섞었습니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대기업의 무능력하고 개야비한 개저씨들의 썩은 관습에 맞서 욕설이든 뭐든 거칠 것 없이 싸우는 대단히 능력있는 자신을 표현했습니다.
더 거칠게 표현하면, '개저씨들이 건드려서 이 구역의 짱 쎈 미친 년이 나선다!' 정도겠네요.
실제로 2시간 30여 분 인터뷰의 상당 시간이 회고나, 카카오톡 대화 캡처를 통해 이러한 구도의 에토스만을 표현하는데 사용됐습니다.
(이러한 에토스가 대중을 향한 직접 발화로 매체를 탄 것 자체로도 요상한데, 이 에토스의 설득이 어느 정도는 성공한 것도 매우 신기하다고 느꼈습니다. 기자들은 역시 이러한 에토스에 열렬하게 반응했던 것도 예상가능하지만 놀라웠구요.
그리고 언제나 카르텔과 맞서 싸우는, 엄정한 법질서의 화신인 용산 누군가의 에토스도 떠올랐습니다.)
2. 파토스
파토스는 설득에 있어 필수불가결하다고 하며, 그 이유는 감정이 사고와 행위를 매개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감정의 동의가 없이는 어떤 사고나 지식, 사실관계도 실제로 행위로 현실화 될 수 없다고 봤습니다.
발화자 자신의 감정, 청중에게 자극하는 감정을 살펴보자면,
저에게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뉴진스 멤버들이 자신에게 공감하고 처지를 위로했다는 대목에서의 눈물 이었고,
초반을 길게 장식했던 수많은 플래시 세례, 경영권 탈취와 무당 친구에 대해 쏟아진 언플에 대한 불안과 공포도, 친구가 없고, 무당 친구에게 위로받아야 하는 외로움도 눈에 띄었지만
가장 중요하고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한 감정은, 분노와 혐오 였습니다.
뉴진스 멤버 결성과 어도어의 설립, 뉴진스 데뷔시기의 홍보 등에 대해 자신의 관점으로 분노를 담아 설명하고
뉴진스를 망치고 업계를 교란할 아일릿의 카피 논란, 무능력한 임원이 받은 인센티브 10억 등에 대해 혐오를 요청했습니다.
후술할 '일 잘하고 서로 사랑했던 부부의 사랑이 실패한 것이다'라는 로고스도 위의 감정들을 향해 연민과 공감을 담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불안과 공포, 눈물, 외로움, 분노와 혐오에 이은 연민과 공감
감정들을 죽 정리해 나열해보니, 격정적인 로맨스 영화의 감정선이 떠오르고, 버림받은 주인공을 구원할 구원자의 자리에 청중들이 서주길 바란 것 같기도 합니다.
3. 로고스
로고스는 협의로는 발화자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논리적인 근거나 실증적인 자료, 논리성 등을 의미하나, 화자가 그 논리성을 어떻게 구성하는지, 그리고 청자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를 포함한 인식과 사고체계를 말합니다.
이 기자회견에서는, 발화자가 상대의 주장에 맞서 어떤 인식체계를, 즉 어떤 프레임을 설득하고 있는지 살펴보면,
(멀티 레이블에서의 레이블 간 조율에 맞서)
-오너가 손댄 카피 그룹과의 차별을 비롯해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본사
(경영권 탈취 문건과 무당 친구와의 주요경영 상담, 인사청탁, 기밀 유출에 맞서)
-저런 본사를 향해 농담처럼 나눈 퇴사계획 및 사담 사찰
(18%의 지분을 연평균 영업이익의 13배-약 1000억-에서 30배로 늘리려는 협상에 맞서)
-가만히 있어도 1000억을 벌 수 있지만 부당함에 싸우고 있고, 인센티브는 20억이지만 적자 임원의 10억에 비해 공정하며, 평생 묶여 있어야 하는 경업금지 노예계약
(모회사와 자회사 대표이사 간의 계약 관계에 맞서)
-서로 일 잘하고 시작에선 사랑했던 부부의 사랑이 실패했다는 개인 간의 진흙탕 싸움을 담은 프레임으로
매우 복잡하고, 전문적인 지식이 요구되는 장시간 동안 벌어진 하이브와 어도어 대표 민희진의 이야기를 설득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기자회견을 보는 동안에는 저렇게나 감정적이고 두서없는 기자회견을 어떻게 2시간 30여 분 동안 하는지, 왜 저러고 있는지 화자의 의도와 효과의 차원에서 이해하기 어려웠으나
어지럽고 두서없어 보이는 기자회견을 세 가지 수사학적 설득의 영역으로 나눠 살펴보니,
실로 다양한 요소들이 대단히 명확한 프레임과 스토리를 전달하고 있다고 생각됐고,
장편영화 150분의 러닝타임이 필요했다고 느껴졌습니다. (그 두서 없음과 흥분과 변호사분들의 제지까지도요)
개인적으론 하이브의 주장들 중에 일부라도 거짓이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는 여론이 변하긴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으나,
이 기자회견 이후 이 분쟁에 대한 대중들의 여론이 꽤 변한 것으로 보입니다.
(합리적이든 불합리하든) 기업의 논리에 어려움을 겪었던 두려움과 분노의 파토스,
혁신적인 상품이 카피캣이나, 대기업의 횡포에 의해 꺾였던 분노와 연민의 파토스도 효과적으로 작동한 것 같지만,
가장 강력했던 것은
다양한 비트를 깔고 밈으로 소비되고 있는
새벽 3시, 투다리 재질의 막말, 욕설의 사이다 에토스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레토릭이 진실을 감추기 위한 도구일 뿐이라고 폄하하며, 소피스트들에 의해 사형장으로 내몰렸습니다.
저는 소크라테스의 편입니다. ^^
이 사건이 어떻게 해결될지는 모르겠지만
뉴진스의 열렬한 팬으로써
앞으로의 법적 공방과 여론전 속에서
뉴진스 멤버들이 최대한 덜 상처 입고, 입은 상처는 잘 치유해가며
한 사람 한 사람의 아티스트로써 훌륭하게 성장해나가길 바랍니다.
전 민희진이 기자회견에서 애들 끌어들일 줄
상상도 못했습니다. 자기애가 너무 강해서 앞을 내다 보질 못하는 사람인것 같습니다.
가끔 현실은 다르게 반응하는 경우도 있더라구요.
그래도 전 휘발성 강한 눈물보단 서류위에
남은 잉크자국이 오래 갈것 같네요.
부정적이더라도 화제성은 매우 높아져 있는 상태인데
민희진 부정 여론 측에서도 '어디 얼마나 잘했나 보자'는 심리가, 민희진 공감 여론 측에서도 '여전히 참 잘한다'는 심리로 매우 큰 관심은 유지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장기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광고모델이나, 이후의 음원 제작에 있어 타격은 분명히 있을 듯 합니다.
제가 정말 싫어하는 인간상이 저들을 키웠고 정신적 유대감이 강하겠구나라고 생각되니 감정이 딱 끊겼습니다.
뉴진스가 좀 더 특별했던건 순도 높은 순수함과 청량함이라고 생각하는데 제대로 깨진거죠.
어차피 결과가 어떻든간에 사람들은 아래와 같이 굵직하게 네가지 중 하나의 리액션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IF 하이브 승, 민희진 패
1. 민희진 없어도 뉴진스는 여전히 인기, 민희진의 능력은 별것 아니었나
2. 민희진 없으니 뉴진스가 예전만 못하네, 방시혁의 실수인가
IF 민희진 승, 하이브 패
1. 민희진의 눈물쑈가 통했다.
2.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경종을 울린 민희진
위와 별개로 법정 승부결과가 어떻든 하이브는 민희진을 내보내려고 할거고 그럼 남은건 뉴진스지요.
피해자로 보시는것도 당연하고요.
근데 하이브는 딱히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아일릿을 Fade In 하고 뉴진스를 계약기간동안 써먹고 Fade Out하면 되거든요.